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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딧 푸드/한국야쿠르트 소식

한국야쿠르트,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작은 손길을 펴다

한국야쿠르트,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작은 손길을 펴다.



1910년. 한일합방이 선포되었고,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후 약 35년간의 뼈아픈 역사 속에서 꽃보다 아리따운 소녀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 잊지 못할 고통받았습니다. 이 소녀들은 이제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때 느꼈던 그 신체적, 정신적 아픔은 여전히 몸과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님에게 작지만 도움이 되고자 한국야쿠르트가 지난 10일, 경기도 광주시의 나눔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나눔의 집은 국내에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쉼터로 이곳에는 총 10분의 '위안부' 할머님들이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나눔의 집은 1990년대 들어 당시 생계조차 어려웠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불교계를 비롯한 온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곳입니다.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시작되어, 혜화동을 거쳐 1995년 경기도 광주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나눔의 집은 '위안부'피해자 할머님 10분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고 계십니다.


 



나눔의 집 중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위안부' 할머님 묘소입니다.


나눔에 집 옆쪽에는 이곳에서 생활하다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작은 묘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님들의 묘비 가운데에는 큰 형상물이 있었는데요. 동그란 모양은 전 세계에 모든 사람들이 동참하여 '위안부'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으며, 그 밑에 연꽃 모양은 할머님들이 지키고자 하던 순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홍보이사님을 대표로 하여 임직원 및 야쿠르트 아주머니께서 먼저 세상을 떠나신 할머님들께 묵념을 했습니다.


 



나눔의 집 곳곳에는 이곳에서 생활하셨던, 그리고 생활하고 계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님 한 분씩 소개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눔의 집 사무국장님께서 홍보이사님과 야쿠르트 아주머니께 할머님 각각 한 분씩 소개해주셨습니다. 


 



생활관과 역사관의 중심이 되는 이곳에는 소녀상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동상에는 살아계실 적 할머님들의 모습과 함께 할머님의 출생지와 어떻게, 어디서 '위안부'가 되셨는지, 그리고 할머님께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신 노력 등이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사무국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곧 할머님의 유골이 이 동상 밑으로 안치된다고 합니다. 


 



할머님들의 얼굴 동상과 함께 가장 제 눈에 띄었던 것은 청동 조각상이었습니다. 청동 조각상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께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결혼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소원이 담긴 청동 조각상 반대편에는 여인과 총과 창, 일본의 상징인 국화가 그려진 청동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창칼에 의해 찢긴 할머님들의 인생이 담겨있었는데요. 두 상반된 청동 상이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할머님들의 아픔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님들의 생활관과 함께 이곳에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도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 역사관은 '위안부'를 주제로 한 인권박물관으로,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추모를 위한 공간과 생존하신 할머님들의 증언으로 재현해놓은 위안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위안부' 피해 할머님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곳과 다양한 관련 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의 관람 요금은 학생은 2천 원, 성인은 3천 원이었으며 비디오 영상 관람을 포함한 가격은 학생 3천 원, 성인 5천 원입니다


이렇게 모인 관람료는 할머님들께서 생활하시는데 필요한 생활비로 이용된다고 합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하니 방문하실 분들께서는 참고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사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보인 것은 바로 소녀 그림이었는데요. 바로 야쿠르트아주머니 뒤쪽에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김순덕 할머님의 ‘못다 핀 꽃’이라는 그림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님이신 김순덕 할머님께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고 하는데요. 심리치료의 목적으로 시작했던 할머님들의 그림은 이제 할머님들의 아픔의 증거이자 대중들에게 쉽게 그 당시의 일본군의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사진과 함께 할머님들이 과거 일본군의 잔인한 악행을 고발하기 위한 증언을 생생히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베트남, 일본의 오키나와, 멀리는 남태평양까지 강제로 끌려갔던 할머님들의 한 맺힌 목소리가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김학순-


'위안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김학순 할머님의 첫 증언에서부터입니다. 김학순 할머님의 용기에 다른 피해 할머님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점차 '위안부'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이 수요집회입니다. 현재 할머님들께서는 매주 두 분씩 돌아가면서 수요집회를 참석하고 계십니다.


위 사진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집회의 모습을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한 모습입니다.





돌아가신 할머님들을 위한 추모공간도 함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벽에는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와 그림, 글귀 등으로 가득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일본어로 쓰인 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나눔의 집에 방문하는 분들 중 약 30%가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과거 나라의 잘못을 사과하려는 일본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할머님들의 핸드 프린트와 그림 작품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관을 쭉 둘러보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17살, 때묻지 않고 순수한 모습의 어린 소녀들이 참담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프고, 사과를 받아야 마땅할 일에 공식적인 사과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나눔의 집 도착해서 만났던 강일출 할머님께서는 ‘나라를 잃어 그리됐으니 또 나라 잃어 그런 일 일어나지 않게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하고, 어른은 일 열심히 해서 나라 살려야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님의 말씀대로 다시는 아픔이 재현되지 않도록 맡은 소임을 다하겠다는 홍보이사님의 방명록과 함께 역사관 관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역사관 관람 후, 한국야쿠르트와 나눔의 집의 상호협력 협약식이 생활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야쿠르트 사회봉사단인 사랑의 손길펴기회가 일제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삶의 공간인 나눔의 집 후원을 시작함을 알리는 자리였습니다.


  

  





홍보이사님께서 할머님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눔의 집에는 총 10분의 할머님께서 생활하고 계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네 분 만이 행사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여해주신 할머님들의 정정하신 모습과 해맑게 웃음 덕분에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야쿠르트는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에 운영비뿐만 아니라, 의료 서비스와 여가 프로그램, 치매예방 프로그램까지 다방면으로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한 나눔의 집에서 머물지 않고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께도 년 2회 나눔의 집을 통해 쌀을 반송해드린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할머님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복지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한 한국야쿠르트! 이번 협약식을 통해 할머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한국야쿠르트가 대신하여 전달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님을 위해 하루빨리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님들께 여러분의 아낌없는 응원을 부탁드립니다!